대화. 클립아트코리아대학교 입학 후, 고등학교 선배들, 동기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타지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반가운 마음에 친목을 다지려는 목적이었죠. 이는 술자리까지 이어졌는데, 한 선배가 술을 마시다가 이윽고 전라도가 고향인 한 동기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선배 : OO아, 올라온 지도 꽤 됐는데 너는 언제까지 사투리를 쓸 거니?
동기 : 글쎄요… 고치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더 노력해야죠.
선배 : 빨리 고쳐. 무식해 보이잖아
동기 : 네? 뭐가 무식해 보여요?
선배 : 네 사투리.
동기 : 형, 제가 비속어를 쓴 것도 아닌데, 어느 부분이 무식해 보여요?
선배 : 다. 네 억양이 제일.
동기가 말하길, 서울에 오니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투리들이 모여있었고, 그중 서울말 하는 친구들이 그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고 합니다. 아나운서나 되어야 그리 말하겠지 했는데 억양 하나 없이 뱉는 말들이 그렇게 깔끔하고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고 말이죠.
비교군이 있으니 그의 사투리가 그도 의식되던 터라 부지런히 사투리를 교정 중이었는데, 그 대화 이후로 그는 사투리를 의식적으로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투리를 의식적으로 고치는 것이 ‘
내가 쓰는 사투리가 무식하다’고 인정하는 것 같다는 이유였죠.
'사투리' 비사용 노력 이유. 언어에 대한 태도, 마크로밀엠브레인, 2013.필자는 한 번도 전라도에서 온 내 친구가 그리고 경상도 출신인 제 아버지가, 군대에서 만난 여러 선·후임이 쓰는 사투리가 무식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표준어의 정의가 곧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인 걸 배웠지만, 그럼에도 한 번도 교양 있는 서울말이 아닌 사투리가 무식하단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죠.
실제로 사투리 사용에 있어서 불평등한 현실과 시선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전에 사회언어학자들이 연구했던 논문을 보았는데 참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서울, 경기 지역을 제외한 각 지역의 언어 사용 양상을 조사했는데 '어떤 지역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갔을 때, 자신의 지역어를 다른 지역어(여기에서는 서울말)로 가장 빨리 교체하는가'에 대한 통계자료와 연구 분석이었습니다.
1위가 제주도였고, 2위가 전라도였죠. 여기에서는 힘의 역학이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서울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인 제주도의 지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갔을 경우 가장 힘 있는 지역어인 서울말로 빠르게 교체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힘의 다양한 표출 형태가 곧 권력이 갖는 속성이라고 할 때, 언어도 권력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국내적으로 보면 수도인 서울의 방언이 다른 지역의 방언을 압도하며 표준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투리' 사용 관련 인식. 언어에 대한 태도, 마크로밀엠브레인, 2013.언어는 곧 개개인의 삶까지 영향을 주는 강력한 권력이 되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표준어와 지역어는 동시에 존재해야 합니다. 언어가 권력이 되어, 힘 있는 지역의 언어가 그 외의 지역어를 흡수시켜 다양한 사람들의 개성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이것이야말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아직까지 사투리를 구사하는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살면서 사투리를 써서 좋았던 적이나 자랑스러웠던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사투리는 내가 지방 사람이라는 낙인, 텔레비전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 영화에서 조폭의 거친 성격을 드러내는 수단 그리고 취업을 위해 필히 고쳐야 하는 말버릇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특히나 특정 지역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데에는 사투리만큼 훌륭한 수단이 없죠.
영화 '신세계'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조직폭력배 '정청'. 미디어스 캡처부산 출신 배우 김정현은 한 인터뷰에서 “사투리를 어떻게 고쳤나?”라는 질문에 “사투리를 고친 게 아니라 표준어를 익힌 거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투리는 지역적 특색이 담겨있는 말일뿐 잘못된 말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사투리를 고치다’라는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합니다.
'고치다'의 정의. 네이버 사전 캡처사투리를 쓰면 불편한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런 의사소통의 불편을 덜기 위하여 전 국민이 공통으로 쓸 공용어의 자격을 부여받은 말이 표준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점은 사투리를 쓰는 게 잘못되거나 고쳐야 할 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 보장과 다양한 문화의 교류에 의한 언어의 탄생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모두 지역어를 보존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존중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그 지역에 자라온 건 잘못이 아닙니다. 살면서 중요한 건 내 고향이 어디냐? 어디 사투리를 쓰느냐? 가 아니라 어떤 가치관이나 사고를 하며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아직도 특별한 이유 없이 저쪽 사투리를 쓰는 경상도인이 밉고 전라도인이 미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