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편의점에서는 술, 담배, 복권, 라이터, 부탄가스, 본드를 미성년자 판매 금지 품목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유해 성분을 갖고 있거나, 청소년에게 해롭게 악용될 수 있는 제품들을 판매 금지함으로써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2021년부터 통유리창에 반투명 시트지를 붙여서 편의점 내 진열된 담배를 비가시화하고 있지만, 유리창에 부착된 담배 간판 덕분에 해당 매장에 담배를 판매하는지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담배 간판에 아주 작게 써진 '19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담배를 판매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굳이 읽지 않아도 담배가 미성년자 판매 금지 상품인 걸 누구나 알고 있죠.
반투명 시트지가 붙은 편의점 통유리창과 담배 간판. 아이뉴스24 캡처계산대로 술, 담배를 들고 오면 신분증 검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지만, 콘돔의 구매 절차는 어딘가 모호합니다. 지점마다 신분증 검사를 하는 곳도, 안 하는 곳도 있는가 하면, 점주들도 헷갈리는 표정으로 콘돔을 쳐다보다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기도 합니다. 심지어 교복 입은 학생이 콘돔을 계산해달라고 하면 화를 내며 쫓아내는 점주도 있습니다.
왜 그러는 걸까요?
콘돔은 술, 담배처럼 성인들의 전유물일까요?
"피임 도구를 준비하지 못해서"청소년의 성관계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대한민국 법으로 성관계를 한 청소년을 처벌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피임은 어떨까요? 청소년의 피임과 피임 도구 사용은 불법일까요? 정답은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미성년자의 콘돔 구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콘돔은
성행위를 할 때 피임이나 성병 예방 등의 목적으로 음경에 씌우는 라텍스 또는 합성중합체 재질의 얇은 고무주머니로, 피임과 위생의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청소년에게 유해하거나 악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관계할 때 꼭 필요한 피임 도구이고, 미성년자의 콘돔 구매는 불법이 아닙니다.
청소년이 구매할 수 있는/없는 콘돔. 닥터벨라 캡처단, 성인과는 달리 기능성 또는 특수형 콘돔은 구매할 수 없습니다. 표면이 오돌토돌한 '돌기형 콘돔'이나 사정 시간을 늦춰주는 약물이 묻어 있는 '사정지연형 콘돔'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여성가족부에서는 특수형 콘돔을 사용할 경우, 청소년의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거나 비정상적 성적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미성년자의 특수형 콘돔 구매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반형, 초박형 콘돔은 언제 어디서나 미성년자의 구매가 합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성년자가 콘돔을 구매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018년 청소년 성관계 실태. 그래픽=이해든청소년 6만 4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질병관리본부 청소년건강행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피임 실천율은 59.3%로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며, 피임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46.2%가 '피임 도구를 준비하지 못해서'라고 답변했습니다.
편의점, 약국, 최근에는 H&B 스토어에서도 콘돔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 청소년들은 왜 피임 도구를 준비하지 못한 걸까요?
"미성년자한테는 콘돔 안 팔아!"몰라서 안 파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청소년의 콘돔 구매가 합법인 걸 알면서 판매를 거부하는 점주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콘돔을 미성년자에게 팔아도 되는 것은 알지만 부모 된 사람으로서 팔지 않겠다”와 같은 답변이 대부분입니다. 기성세대의 잘못된 인식과 시선으로 콘돔 구매에 실패한 청소년들은 결국 피임 도구 없이 성관계를 갖고, 때로는 원치 않는 결과까지 맞이하게 됩니다. 청소년의 콘돔 구매에 대한 인식이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걸까요?
한 편의점에 붙었던 청소년 콘돔 구매 금지에 관한 안내문.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캡처문제는 콘돔을 쾌락의 도구로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피임 목적의 의료기기가 아닌 쾌락 목적의 성인용품으로 보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것을 구매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됩니다. 이는 콘돔을 구매하는 청소년으로 하여금 마치 절대 저질러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사회적 규범을 이탈하는 엄청난 탈선행위처럼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여 피임 도구를 찾는 청소년들을 위축되게 만듭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청소년에게 콘돔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성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긴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콘돔 판매를 금지한다고 해서 성관계에 대한 청소년들의 관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성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는 등 신체적 변화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청소년기에 이러한 호기심은 매우 당연한 현상입니다. 담배는 편의점 계산대 뒤에 가림막 하나 없이, 술은 투명한 유리문이 달린 냉장고에 잘 보이게 진열되어 있는데, 유독 콘돔만 입에 올리기도 조심스러운 금기어처럼 취급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구매할 수 있어요! #YES콘돔 캠페인YES콘돔 캠페인은 암묵적으로 언급이 금기시되었던 청소년 콘돔 구매에 입을 열고, 편의점과 약국 등에 진열된 콘돔을 올바르게 가시화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합니다. 제품 포장지와 진열대에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 금지'가 기재된 술과 담배처럼, 이제 콘돔 진열대에도 판매자와 구매자에게 정확한 판매 기준을 알려줄 가이드라인이 필요합니다.
청소년의 콘돔 구매 기준에 대한 가이드라인 배너 예시. 그래픽=이해든콘돔 진열대에 청소년의 구매가 가능하다는 문구를 명시하고, 청소년이 구매 가능한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을 정확하게 안내해 주세요. 피임 방법을 지키고 건전한 성관계를 실천하는 청소년들이 사회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도록 함께해 주세요.
성인들의 안전한 성관계에 필요한 콘돔, 청소년에게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이상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의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 예방을 위해, 이제 함께 말해주실 수 있나요?